[유병연 칼럼] 사외이사 독립, 사람만 바꾼다고 되겠나

입력 2024-03-13 18:07   수정 2024-03-14 00:56

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 핵심 이슈 중 하나는 ‘경영진 거수기’라는 비판이 커진 사외이사 변화다.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출신 외국 기업 임원이나 여성을 영입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30대 그룹이 추천한 신규 사외이사(103명) 중 67%는 교수, 관료, 법조인 출신이다. 전문적인 사외이사 인력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인력 다양성을 높인다고 거수기라는 오명이 불식될지도 의문이다.

사외이사는 대주주 견제·감시를 위한 제도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독단적 오너 경영의 부작용이 드러나자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에 따라 1998년 2월 도입됐다. 상장법인은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전체 이사 수의 과반(최소 3인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시행 26년이 지나 자리를 잡을 때도 됐지만 독립성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상황이다.

최근 소유분산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연임 시도 과정에서 드러난 사외이사의 일탈은 충격적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8월 캐나다에서 초호화 이사회를 열며 총 7억원에 가까운 경비를 썼다. 참석자 1인당 하루 평균 숙박비로 175만원, 미쉐린 식당 식사와 최고급 와인 등 식대로 1억원을 지출했고, 전세기와 전세 헬기까지 이용했다고 한다. KT&G는 2012년부터 거의 매년 수천만원을 들여 사외이사들에게 외유성 해외여행을 보내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러니 사외이사가 경영진 견제보다는 CEO를 방어하고 ‘셀프 연임’을 돕는 참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난에 속수무책이다.

이런 모습은 같은 사외이사제를 운용하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미국에선 이사회가 창업자를 해고하는 일조차 낯설지 않다. 비록 5일 만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지난해 말 챗GPT를 흥행시키며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을 이끈 오픈AI 이사회가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샘 올트먼 CEO를 전격 해임하기도 했다. 테슬라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조차 페이팔 CEO 시절 호주로 신혼여행을 가는 길에 이사회로부터 해임 통고를 받아 축출됐다. 대부분 기업에서 업무 집행과 감독을 분리하는 ‘감독형 이사회 제도’가 안착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경영 정책과 감독기관이 일체화된 이사제 형태가 도입된 후 그대로 뿌리를 내렸다. 경영진과 그들이 선임한 사외이사가 한배를 탄 채 ‘권력 공동체’를 형성하며 짬짜미 논란을 불러오기 손쉬운 구조다. 이런 시비는 오너가 없는 소유분산 기업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한 번이면 사고지만 계속되면 시스템 문제다.

우리나라에도 이사회의 감독 기능과 업무집행 기능을 분리해 경영진의 업무 집행을 감시하는 제도가 있다. 2011년 상법 개정으로 도입된 집행임원제가 그렇다. 이사회와 집행임원을 분리해 집행임원은 자신이 맡은 분야 업무에 전권을 갖고, 이사회는 집행임원에 대한 업무감독과 감사를 맡되 경영 관련 의사결정에는 간여하지 않는 제도다. 하지만 기존 사외이사 형태가 공고화한 상황에서 경영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겹쳐 국내에선 도입이 저조한 실정이다.

지배구조는 기업의 자율선택권이다. 다만 최근 소유분산 기업에서 드러난 사례처럼 이사회의 감독 기능을 형해화하고 사외이사를 활용해 참호를 구축하는 문제가 반복된다면 강력한 이사회 견제 기능을 위해 집행임원제 도입을 고려해볼 만하다.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 회사의 업태와 경영 구조, 주주 구성 등이 다변화한 환경에서 천편일률적인 사외이사 체제에도 변화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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